에리히 마르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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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에리히 마르크스는 독일의 군인으로, 제1차 세계 대전과 제2차 세계 대전에 참전했다. 1910년 육군에 입대하여 참모 훈련을 받고 철십자 훈장을 수여받았으며, 자유군단에서 활동 후 국방군에 입대하여 참모 및 지휘 직책을 역임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에는 제8군단 참모장, 제101 경보병 사단 사령관 등을 거쳐 제84 군단 사령관으로 노르망디 상륙 작전을 지휘하다가 연합군의 공습으로 사망했다. 사후 철십자 기사 십자 훈장에 참나무 잎이 추서되었으며, 영화 '가장 긴 날'과 '롬멜'에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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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리히 마르크스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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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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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에리히 마르크스 |
출생 | 1891년 6월 6일 |
출생지 | 쇤베르크, 프로이센, 독일 제국 |
사망 | 1944년 6월 12일 (53세) |
사망지 | 생로 에베크레봉, 프랑스 |
군사 경력 | |
소속 | |
복무 기간 | 1910년–1944년 |
군 계급 | [[File: General (Wehrmacht) 1.svg|40px]] 포병대장 |
지휘 | 제84 군단 |
주요 참전 전투/전쟁 | 제1차 세계 대전 제2차 세계 대전 폴란드 침공 프랑스 공방전 발칸 전역 동부 전선 노르망디 상륙 작전 |
서훈 | 백엽 기사 철십자 훈장 |
2. 군 경력
에리히 마르크스는 1891년에 태어나 1910년 육군에 입대했다.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하여 참모 훈련을 받고 1917년 제국 참모 본부로 전출되었으며, 철십자 훈장을 수여받고 독일 최고 사령부에 배치되었다.[1] 전쟁 후에는 자유군단에서 활동하다가 독일 공화국 육군(국방군)에 입대하여 여러 직책을 거친 후 국방부에서 근무했다. 1933년 히틀러 집권 후 육군으로 전출되어 제8군단 참모장을 지냈으며, 철십자 기사 십자 훈장을 수여받았다.[2]
2. 1. 제1차 세계 대전 참전
1910년 육군에 입대하여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했다. 참모 훈련을 마치고 1917년 제국 참모 본부로 전출되었다. 철십자 훈장 2급과 1급을 수여받았고, 독일 최고 사령부에 배치되었다.[1]2. 2. 전간기 활동
에리히 마르크스는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준군사조직인 자유군단에서 활동했다. 이후 독일 공화국 육군(국방군)에 입대하여 1921년부터 1933년까지 여러 참모 및 지휘 직책을 역임했고, 국방부에서 근무했다.[1]2. 3. 제2차 세계 대전 참전
에리히 마르크스는 1933년 4월 1일 아돌프 히틀러가 집권한 후 육군으로 전출되어 제8군단 참모장으로 근무했다.[2] 그는 제8군단 참모장으로 폴란드 침공에 참여했고, 제18군 참모장으로 승진하여 프랑스 공방전에 참전했다.[2] 1940년 여름, 프란츠 할더 OKH 참모총장은 마르크스에게 소련 침공에 대한 초기 작전 계획을 작성하도록 지시했다. 마르크스는 "동쪽 초안 작전"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작성했고, 이는 바르바로사 작전의 독일 초안이 되었다.[2]
1940년 12월, 마르크스는 제101 경보병 사단의 사령관이 되었다.[2] 1941년 6월 우크라이나에서 중상을 입어 왼쪽 다리를 절단해야 했다.[2] 1942년 3월부터 1942년 9월까지 제337 보병 사단의 사령관으로 복무했다. 이후 포병 대장으로 진급했고,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 작전 당시 제84 군단을 지휘했다.[2] 그는 D-Day에 53번째 생일을 맞이했고, 1944년 6월 12일 연합군의 공습으로 부상을 입고 그날 사망했다.[2]
3. 바르바로사 작전
마르크스는 제8군단 참모장으로 폴란드 침공에 참여했고, 제18군 참모장으로 승진하여 프랑스 공방전에 참전했다. 1940년 여름, 프란츠 할더 OKH 참모총장은 마르크스에게 소련 침공에 대한 초기 작전 계획을 작성하도록 지시했다. 마르크스는 "동쪽 초안 작전"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작성했다. 이 보고서는 "적의 폭격기로부터 독일을 보호"할 필요성을 언급하면서 "러시아" 침공의 작전 목표로 A-A선을 옹호했다(오류). 이 목표는 북극해의 아르한겔스크에서 고르키, 로스토프를 거쳐 볼가강 하구의 아스트라한까지 이어지는 선이었다. 마르크스는 모스크바 점령을 포함한 이 작전이 9주에서 17주가 소요될 것으로 예상했다.
4. 사망
마르크스는 제2차 세계 대전 중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 작전 당시 공습으로 1944년 6월 12일 부상을 입고 당일 사망했다.[2] 이날은 그의 53번째 생일이었다. 사후인 1944년 6월 24일, 철십자 기사 십자 훈장에 참나무 잎이 추서되었다.
5. 사후
마르크스는 1944년 6월 12일 D-Day에 53번째 생일을 맞이했고, 연합군의 공습으로 부상을 입고 사망했다.[2] 사후인 1944년 6월 24일, 철십자 기사 십자 훈장에 참나무 잎이 추서되었다.
6. 대중문화
1962년 영화 《가장 긴 날》에서 리하르트 뮌히가 마르크스 역을 연기했다. 2012년 TV 영화 《롬멜》에서는 한스 크레머가 마르크스 역을 연기했다.
7. 서훈 내역
참조
[1]
간행물
Erich Marcks Biography
https://www.dday-ove[...]
2016-02-19
[2]
서적
Danger Zone
20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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